질문도 토의도 없는 이상한 발표회
완두콩을 이용해 우성의 법칙을 발견한 멘델이 처음 논문을 발표하던 날, 유전학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전학의 기초와 체계를 세운 그 논문이 왜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을까요?
'멘델의 법칙'은 자연연구회 월례회에서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그 회의장에는 대학교수, 의사, 과학 연구자 등 전문 유전학 관계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었지만 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못마땅해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심지어 거드름을 피우는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어 멘델이 연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순간 끊임없이 계속되던 웅성거림이 노골적으로 커졌습니다. 앞좌석에 앉은 이들은 발표 내용을 듣기도 전에 멘델을 비웃었습니다. 멘델이 시골 수사인데다 집 앞에 식물을 키우며 이상한 실험을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멘델은 중학교 생물교사 시험에 떨어진 경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제출한 답안지는 엉터리였을 정도였으니까요.
유전학에 권위와 명망이 있던 그들로서는 그런 일개 시골 수사의 논문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다. 당연 질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수학을 이용한 연구 방식이었습니다. 유전학에 수학의 원리를 이용해 잘못된 결론을 도출한 사례가 종종 있었기에 그들은 멘델의 법칙을 아마추어 논문쯤으로 치부했습니다.
사실 그의 스승도 멘델이 연구하는 방식과 법칙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멘델이 사용한 방법이 엉뚱했기 때문입니다. 각 생물 전체의 성질을 연구하는 게 당연한데 멘델은 한 부분의 특질에 집중해 연구한 것이었습니다. 멘델은 특히 색깔이나 주름에 주목했습니다. 그날 회의 기록을 살펴보면 “질문도 토의도 없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인 멘델의 논문은 그가 죽은 지 1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한 이유 중에는 멘델의 좋지 못한 소문과 아마추어라는 색안경이 한몫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 유전학 최고의 논문을 16년 넘게 썩힌 사례였습니다.
시력을 소생기키는 돌
푸르름을 더해가는 계절, 많은 사람들은 신록이 우거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눈의 피로감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인들은 눈의 피로를 어떤 방식으로 치료했을까요? 그들은 초록빛 나무를 바라보는 대신 초록빛 보석을 바라보며 피로한 눈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에메랄드가 그것인데요, 로마인들은 에메랄드를 단순한 보석이 아니라 '시력을 소생시키는 신성한 돌' 이라 믿었습니다. 실제로 에메랄드는 눈병 치료제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녹색을 띠는 보석' 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Smaragdos' 에서 유래된 에메랄드는 미의 여신 비너스를 상징하는 보석이기도 합니다. 평소 에메랄드를 가까이했던 비너스가 거리를 걸으면 그곳에 꽃들이 피어나고 푸른빛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고 합니다.
또한 유대인 율법박사들 사이에서는 거룩한 돌 중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했으며, 기독교에서도 친절과 친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보석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와 그 제자들의 성찬에 에메랄드로 장식된 그릇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에메랄드가 지구를 상징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왕들은 에메랄드로 장식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했으며 인도의 많은 신들 중 하나인 비슈누의 목에는 에메랄드 목걸이가 걸려 있다고 전해집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도 에메랄드를 무척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투사들의 싸움을 초록빛 에메랄드로 된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고 합니다.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자신의 권위를 강조
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에메랄드 소유자는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부와 권력을 누리고, 연인의 말 중에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줄 알게 해준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에메랄드는 다른 보석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부딪치거나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며, 화장 약품, 아세톤 또는 석유, 세척력이 강한 초음파 세척기나 뜨거운 온천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